문학/오늘의 추천시

장날--이동 순

엄학섭 2008. 11. 2. 22:08
장날--이동 순


물건을 팔러 온 장돌뱅이가
물건을 사기도 하는 시골 장날
고추 팔러 온 사람이 실타래를 흥정하고
참기름 짜러 온 사람이 강아지를 파는 동안
악다구니로 보채던 어린것은
어미 등에 업히어 한껏 잠이 달다
신새벽 해 돋기 전부터 몰려와서
젖은 장바닥에 들끓는 삶의 거래
머리에 수건 한 장을 둘러쓰고
결 고운 인심을 주고받는 아낙네들
수염이 허연 영감이 한복을 차려 입고
점잖게 붓 벼루 팔고 있는 시장 골목
묶여서도 싱싱한 배추들의 생기와
강엿 가루 반짝이는 목판을 지나오면
한 손에 굵은 소금을 담뿍 움키고
생선에다 기운차게 뿌리는 어물전 곰보
해 지고 장 보는 이도 발길 뜸한데
뚱뚱한 돼지집 여편네의 손목을 잡고
거나하게 저물어 가는 가을 주막
내일도 붐비는 타관의 장터로 찾아가서
맑은 봇짐 끌러놓을 장돌뱅이가
꿈에서도 콧노래 흥얼거리는 시골 장날

<이동순 시집 그대가 별이라면 시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