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의 추천시

지금 막 하고 싶은 그 말 한마디를 참아라--정채봉

엄학섭 2008. 12. 17. 19:51

지금 막 하고 싶은 그 말 한마디를 참아라--정재봉

 

 

홀로 키운 딸을 시집 보내면서
어머니가 비단 주머니 하나를 주었습니다.

"어미 생각이 나거든 열어 보려무나."
신혼 잠자리에서 일어난 딸은
문득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저며옴을 느꼈습니다.

그는 살며시 비단 주머니를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하얀 종이학들이 조용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마리의 종이학을 꺼내어 풀어 보았습니다.
그 종이에는 이런 말이 담아져 있었습니다.

"딸아, 나 처럼 말을 아껴라. 같은 생각일 때는
'당신과 동감'이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빙그레 웃음으로 만족과 또는
거부를 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봄비 오는 날 저녁,
어머니가 그리워졌습니다.

그는 두번째로 비단 주머니를 열고
가만히 종이학을 풀었습니다.
거기에서 이번에도 어머니의 말이 나왔습니다.

"딸아, 남의 말을 듣을 때에는 네가 말할 때보다도
더 정신 기울여 들어라.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네 말을 잘한 것보다도 효과가 크기도 하단다."

어느 날에는
남편에게 환멸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날 역시 비단 주머니를 열고서
종이학을 꺼내어 풀어 보았습니다.

"딸아, 네 마음을 찾아가는 길은
어미에게로 오는 고속도로가 아니다.
고요가 있는 오솔길로 걸어가면서
대화해 보려무나.
너의 너와, 또 네 남편과,
나뭇잎과 산새와 흰구름과 함께"

마침내 한바탕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작은방으로 물러가서
비단 주머니를 열어 종이학을 꺼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지금 막 하고 싶은 그 말 한마디를 참아라...!"

 

 글: 정채봉의 지혜주머니에서

'문학 > 오늘의 추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셰익스피어--소네트 89  (0) 2008.12.27
유태인의 시  (0) 2008.12.20
침엽의 생존 방식--박인숙  (0) 2008.12.06
나의 길--한용운  (0) 2008.11.24
바람의 집-겨울 판화(版畵)1--기형도  (0) 2008.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