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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학섭 시집 『천둥오리 따라간 때까우』

엄학섭 2013. 7. 19. 14:05

 

 

 

 

       펴낸곳: 도서출판 우인북스 표지그림: 백영미 시인 기획 진행: 전효복 사장

 

 

 

 

 

 

 

 

■ 해 설

 

 

 

엄학섭의 시 세계와 동화시의 전통계승

 

 

 

 

 

 

 

이 동 순(시인, 문학평론가)

 

 

 

 

 

 

 

 

 

 

 

엄학섭(嚴學燮)은 수년 전 필자가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생명과 사랑의 시>라는 문학 겸 친교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시절에 만난 시인이다. 그가 창작공간에 올리는 작품의 특징은 다른 문학애호가들의 작품과 여러 면에서 구별되었다. 그 주된 특징이라면 우선 그가 동화적 서술형태의 시작품에 대한 애착을 일관되게 나타내 보였다는 점이다.

 

동화시(童話詩)라면 최근 문학사에서 매몰시인으로 감추어져 있다가 완전한 복원이 되어서 광명한 세계로 솟구쳐 나온 백석(白石, 1912∼1995) 시인의 「집게네 네 형제」, 「오징어와 검복」, 「개구리네 한 솥밥」, 「쫓기달래」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출발부터 동시를 썼던 윤석중(尹石重, 1911∼2003), 윤복진(尹福鎭, 1907∼1991) 등은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 문학사에서 자유시를 쓰는 시인으로 동화적 모티브를 활용해 시작품을 쓴 경우란 그리 많지 않다. 일찍이 1930년대의 대표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1950)과 일제말의 윤동주(尹東柱, 1917∼1945) 등을 들 수 있을 것이고, 해방 이후로는 박목월(朴木月, 1916∼1978) 시인의 동화적 모티브를 들 수 있겠다. 그들이 동화적 모티브를 쓰는 배경에는 한없이 순수하고 천진무구한 아동심리의 세계에 의탁해서 시적 대상이나 사물의 근원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엄학섭 시인의 경우도 전자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 지용과 동주의 경우는 자유시와는 구분되는 동시적 발상으로 시를 써서 하나의 작품집 내부에서 현저히 구분되는 세계를 나타내 보였고, 이것은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시인이 쓴 동시라는 관점에서 연구 분석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목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엄학섭 시인의 경우는 이번 시집에 수록된 59편 전체 작품의 경우가 하나같이 결 고르게 동시적 모티브를 활용해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창작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전체 작품을 일별해보면 시인이 시적 대상에 임하는 자세나 정신세계로서의 빛깔은 매우 순수하고 고결하다. 그리고 천진난만하다. 호남방언의 재치 있는 활용도 작품의 흥미를 유발시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59편 작품 가운데서 유독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돋보이는 작품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옛날 그 옛날」이다. 이 작품은 ‘시집 속의 시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편수나 작품세계에 있어서 하나의 독립적 개별성을 지닌다. 일종의 연작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전체 번호가 1에서 63에 이른다. 그러니까 번호를 붙이지 않고 제각기 독립된 작품제목을 달아서 분리하면 그야말로 충분히 시집 한 권의 분량이라 할 수 있다. 명실 공히 방대한 장시 형태이다. 매 작품마다 색다른 소재와 배경을 이끌어서 펼쳐 가는데, 추억의 시간여행이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독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호남방언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부분이다. 백석이 자신의 창작에서 평안도 일대 관서지방(關西地方)의 방언에 적극적으로 집착을 보인 것은 민족 언어의 망실에 대한 현저한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백석의 방언집착은 고향에 대한 애착, 민족적 정체성과 순수성이 훼손되어가는 식민지 제국주의 세태에 대한 강력한 저항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엄학섭의 동화풍 시편들은 백석시의 세계와 많이 닮아있다. 엄학섭의 작품에서 활용된 신선한 어휘사례들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빠꿈, 아그덜, 낭굿가지, 깨오락지, 달롱개, 비암때알, 찔구순, 는개비, 뽀꿈담배, 때깐치, 깬주박낭구, 토깽이풀, 가새, 이치라시, 먹머구리, 때까우, 오란비, 뿌락대기, 삐비, 깨복쟁이, 핑겡이, 귀몽나무, 진도링, 깨댕이, 산때알, 뺑도리, 오돌개, 서숙알, 귀영치, 눈포래 등등

 

 

 

그 사례를 낱낱이 찾아서 들자면 이보다 훨씬 많이 수집이 된다. 하나하나 어휘들을 곰곰이 헤아려본다면 짐작이 되는 어휘들도 있지만 전혀 생소한 것들도 있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백석시집의 경우처럼 낱말풀이를 친절하게 달아주는 것도 배려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거나 노년기세대들의 추억 속에서 어렴풋이 살아있는 이런 민족 언어들의 아름다움과 고유성에 대해서 우리는 새삼 그것의 문화적 가치를 다시금 재인식하며 오늘의 우리 자신을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엄학섭은 이 작품에서 이런 어휘들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면서 시인의 유소년기에 직접 체험했던 고향에서의 추억들을 마치 영화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차례차례 떠올린다. 그것은 낡은 고무신으로 엿 사먹기, 맞선 보던 누나의 기억, 마을 앞 강변에 나가서 친구들과 물고기 잡던 추억, 단오 날의 마을잔치 풍경, 태풍 끝에 마구 떨어진 과일 줍기, 쇠똥구리가 뭉친 쇠똥을 굴리며 놀던 추억, 여름날의 신나는 물놀이, 호젓한 가을오후의 알밤 줍기, 하루 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던 굴렁쇠 놀이, 입술이 까매지도록 오디를 따먹던 추억, 여름밤 마당 멍석에 누워서 광막한 하늘의 별자리 찾던 기억, 농촌의 가을풍경, 성묘와 추수, 하늘을 가득 채우며 날아가던 철새들의 이동광경, 집안의 힘센 어른들이 주도하던 김장독 파묻기, 쥐잡기, 대보름날 달불 놀이, 설날을 비롯한 명절날의 아련한 추억들 등등 그 모든 유소년기의 추억들이 엄학섭 시세계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을 통하여 시인이 겨냥하는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끈끈한 운명과 인과관계로 결속되어 있는 우리 한국인의 삶이 어떻게 하면 행복과 안정의 세계를 신속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뇌의 표현이다. 이러한 정신적 갈망을 시인은 아동화법에 의탁해서 실감나게 담아내고 있다.

 

엄학섭 시인의 시정신은 오로지 고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맑고 담백하며 천진한 인간성이 흘러넘쳐서 세상의 혼탁한 모습이 정화되기를 기원하는 일관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을 비롯한 중요국경일과 현충일 등의 공휴일이 지닌 배경과 의미를 시적으로 재해석한 다수의 작품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데서도 그런 면모가 드러나고 있다. 시 「꿈속의 사물」이 지시해 보여주듯 엄학섭은 모든 존재와 사물들이 풍성하고 따뜻한 사랑의 세례를 받아서 평화와 안정 속에 우리가 지녔던 본래의 아름다운 고전적 질서를 회복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집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작품은 「시인의 눈물」이다.

 

이 시작품은 독립된 시작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인 자신의 시적 아포리즘을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학섭 자신이 시에 임하는 자세와 가치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후기(後記)라 해도 적절할 듯하다. 이 글에서 시인은 시작품의 창작행위를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이라는 매우 흥미로운 발언을 하고 있다. 더불어 시는 심각한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매우 필요한 묘약(妙藥)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던지고 있다. 엄학섭 시인이 줄기차게 시작품의 창작에 오랜 기간 집념을 보이며 실천에 옮기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의지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바라건대 엄학섭 시인은 한번 기획한 자신의 문학적 꿈과 포부를 줄기차게 밀고 나가서 백석 시인의 동화시 정신을 더욱 굳건히 일으켜 세우고 나아가서는 한국문학사의 문화사적 전통을 이어나가는 튼튼한 시인이 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토속적 풍물시와 박물학적 언어관

 

 

 

 

 

                                       엄학섭의 시세계/ 박남희(시인, 문학평론가)

 

 

 

 

 

                               

 

                                                             

 

 

 

 

 

 

 

 

 

천진성의 시학으로 일컬어지는 엄학섭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시인은 백석이다. 백석은 1935년 조선일보에「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그 이듬해에 첫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시인이다. 당시에 백석의 시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시가 당시 시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전통 서정시와 모더니즘 시와 리얼리즘 시의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이들의 시세계를 아우르는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백석은 그의 시에 함경도 사투리와 토속어를 사용함으로써 모국어의 확장을 꾀했고, 종전의 정제된 운율이 바탕이 된 시의 고정된 틀을 허물고 시 속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는 서사성을 도입하여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 시를 창작함으로써 시형식의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특히 백석의 시가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종전의 개인의 정서나 감정을 노래하는 시나 자연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던 시와는 달리, 우리네 삶의 구체적인 생활 현장을 시 속에 튼실하게 뿌리내리는 생활시 내지는 풍물시의 전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유년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엄학섭의 시들은 1930년대 이후 백석이 이룩해 놓은 새로운 시세계를 유사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백석시의 전통을 21세기 이후의 현대시로 확장시키고 있다. 백석시가 함경도 사투리를 바탕으로 당시의 토속적인 정서나 풍물들을 노래하고 있다면, 엄학섭의 시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중심으로 한 토속어를 사용함으로써 온고지신의 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엄학섭의 시가 백석의 시처럼 동화시나 풍물시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의 시에 비해 비교적 단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엄학섭의 단시들은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형태의 시이지만 그의 다른 시들과 긴밀한 연계성을 가짐으로써 시인의 유년체험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일종의 단편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일찍이 고은 시인이 수많은 인물들을 담아낸 「만인보」연작을 통해서 단편 서사시의 총체성을 보여주었던 것에 비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모든 현대시는 이전 시와의 연계성 또는 모방이라는 화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엄학섭의 시가 비록 백석이나 고은 시인의 전통을 잇고 있는 시사적인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시의 편편을 살펴보면 엄학섭 시인만의 특성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엄학섭 시인은 토속적 설화시의 계승자이면서 새로운 창조자인 셈이다. 이번에 첫 시집을 상재하는 엄학섭의 시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시는 총 63편의 연작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옛날 그 옛날」이다. 이 시는 분량으로만 보더라도 작은 시집 한권에 이르는 연작 단편 서사시로서 일종의 풍물시나 향토시에도 포섭될 수 있다. 이 시의 첫머리에 놓여있는 시들을 우선 읽어보기로 하자.

 

 

 

 

 

1

 

옛날 그 옛날

 

탱자산골에서 빠꿈 살던 그 옛날

 

천진 아그덜 고무줄 넘군데

 

지부가 찾아와 봄각시 서찰(書札) 받았다.

 

 

 

2

 

낭굿가지로

 

굴뚝새 외출이 자자지면서

 

매화(梅花)가 전개하니

 

산척촉(山躑躅), 연교(連翹), 수선화(水仙花)가 화토연바람 일으켜

 

동백(冬柏)과 살구(杏花)가 춘등잔 켜고

 

복송꽃(桃花)과 산수유(山茱萸)가 감격불 지폈다.

 

 

 

3

 

시하내 얼었던 갱물이 지지개를 펼치자

 

물레방아 소리 듣고 깨오락지가 잠에서 깨어나

 

논과 밭에서 쟁기질 소리가 당차게 들리고

 

들에서 노물 캐는 풍경이 도드라졌다.

 

 

 

 

 

 

흡사 백석이 살던 시대에 씌어진 듯한 엄학섭의 시들은 구수하고 토속적인 남도사투리를 구어체로 사용하여, 시인이 살던 ‘탱자산골’에 봄이 오는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시의 분위기는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현대시의 문법에서 벗어나 독특한 화법과 분위기를 창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낯설면서도 새롭다. 단시 한편이 보통 3~4행 정도 되는 짧은 시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언어에 밀도가 느껴질 정도로 짜임새가 있다. 이러한 느낌은 이 시들이 남도의 토속적 방언이 바탕이 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서 엄학섭의 시들이 단순히 사투리를 나열하고 있지 않고 적당한 비유와 감각적인 표현법을 사용해서 시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예를 들면 연시 1에서 시인은 “지부(제비)가 찾아와 봄각시 서찰(편지) 받았다”고 진술함으로써 ‘지부’를 ‘서찰’로 은유해내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연시 2에서 “동백(冬柏)과 살구(杏花)가 춘등잔”을 켠다고 하여 꽃을 불로 은유하고 있고, “복송꽃(桃花)과 산수유(山茱萸)가 감격불 지폈다”고 표현함으로써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을 단지 외형을 그려내는데 머물지 않고 내면화

 

하고 있다. 이처럼 엄학섭 시인은 ‘춘등잔’이나 ‘감격불’과 같은 개성적인 시어들을 새롭게 발굴해냄으로써 이전 시의 전통을 단순히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조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빠꿈(소꿉)’, ‘시하내(겨우내)’와같은 시어들은 국어사전이나 방언사전에서도 찾기 어려운 말을 시인이 발굴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언어의식은 일찍이 정지용이나 백석이 보여주었던 민속어에 대한 사랑을 후대에까지 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가치를 지닌다.

 

 

 

 

 

 

16

 

대추낭구 시집보낸 날

 

남녀노소 날개옷 단장하고 단오잔치를 열었다.

 

장정들은 당산낭구 아래 씨름판과 척사판을 열고

 

아낙들은 창포물로 머리 감고 그네와 널을 뛰며

 

온 부락민이 성황당(城隍堂) 앞에서 마당놀이를 즐겼다.

 

 

 

(중략)

 

 

 

 

 

21

 

고라실에서 물괘기 잡았다.

 

물 속으로 손을 넣어 물풀과 돌틈을 살살 더듬거렸다.

 

쌀붕어 한 마리와 꼭사리 두 마리를 잡아서 신발 속에 집어넣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중략)

 

 

 

25

 

삼복더위가 불뿜는 오후

 

상수리낭구 모여사는 곤충들을 만났다.

 

낭구 위로는 사슴벌레가 앉아 자리 지키고

 

낭구 아래는 핑갱이가 모여서 살림 꾸리고

 

낭구 뒤로는 하늘소가 숨어서 망을 보았다.

 

 

 

 

 

 

연시 16은 대추나무 시집보내고, 장정들은 씨름판과 척사판(윷놀이)을 열고, 아낙들은 창포물로 머리 감고 그네와 널을 뛰며 잔치를 벌이는 단오제 풍습을 보여줌으로써 풍물시의 진경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연시 21은 시인이 어린 시절 고향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던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서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연시 25에서 시인은 어린 시절 상수리나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슴벌레, 핑갱이(풍뎅이), 하늘소와 같은 곤충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일상의 민속풍경에서 자연풍경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유년체험을 현장감 있게 살려냄으로써 풍물시의 전형에 다가서고 있다. 이러한 풍물시의 풍모는 엄학섭 시

 

인의 다른 시들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추석 이브」이다. “대문 밖 인기척이 들리자/서울 누나 왕림이요/엄마가 부엌에서 펄쩍 뛰며/ 오메 아그덜 왔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추석을 맞아 서울에서 식구들 선물을 사들고 올라온 누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와, 방마다 모여 송편 만들고 고스돕을 치고 있는 가족들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엄학섭의 시에서 다음으로 주목되는 시는 동화시의 성격을 지닌 시편들이다.「천둥이 된 흰 구름」,「옛날 어느 봄날」,「수채화 속 단풍잎 소녀」,「가을 소풍」,「천리포 수목원」,「밝은 태양」,「꿈속나라 결혼식」등은 한결같이 동화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동화시는 동화의 서사형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시를 말하는데, 백석이 해방 후에 동화시를 쓴 것이 해방 전후의 좌우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면, 엄학섭의 동화시들에는 복잡한 문명사회의 부정적인 현실로부터 벗어나 아이들의 동화적 세계와 교감해보려는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이 중에서「꿈속나라 결혼식」은 동화시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의 시쓰기를 표상한 메타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꿈속나라 하늘에서 양판눈이 몰려와

 

이웃나라 왕자가 눈사람을 만드니

 

설화공주 깨어나 신나게 놀았어요

 

왕자는 요정의 시술(詩述)에 걸려 돌맹이가 되었어요

 

공주가 꿈을 꾸니

 

요정이 놓고 간 초록색 단추에 퇴고라 씌였어요

 

공주가 퇴고를 읽으니

 

돌맹이가 움직이며 왕자로 변했어요

 

공주는 왕자에게 장미꽃을 선물했어요

 

함 사세요 함 사

 

오늘은 왕자와 공주가 꿈에서 결혼해요

 

주례는 창작마을 퇴고아저씨

 

하객들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꿈속나라 결혼식」전문

 

 

 

 

 

 

위의 시에 의하면 시인의 시쓰기는 ‘꿈속나라 결혼식’이다. 이시는 ‘양판눈’, ‘시술(詩述)’, ‘퇴고’, ‘창작마을’등의 시어에서 보듯이 동화시 전체가 일련의 창작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진술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 왕자가 요정의 시술에 걸려 돌멩이가 되는 것이나, 공주가 퇴고를 읽으니 돌멩이가 움직이며 왕자로 변하는 것은, 시인의 지난한 시쓰기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이 시에서 결국 왕자와 공주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이야기가 문자를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과정의 비유인데, 이러한 시쓰기는 결국 하객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결혼식(시쓰기)이라는 점에서 시인의 필연적인 고독을 읽을 수 있다. 엄학섭 시인의 시 중에는 「꿈속나라 결혼식」뿐만 아니라 「어느 시인의 독백」,「시인의 눈물」같은 메타시가 눈에 띈다. 특히「시인의 눈물」은 일찍이 일제 말기를 불우하게 살다간 윤동주가 「쉽게 씌어진 시」에서 자신의 시쓰기를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독백시를 쓴 것처럼, 일종의 반성적 독백시이다. 어쩌면 산문과도 같은 이 시에서 시인은 솔직하게 자신의 시관을 피력한다. “아즉까지도 시를 왜 쓰는지조차 정답을 모른다/ 다만 시가 우리의 생활 속으로 다가와/ 일종의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핑계로/ 시 자체가 작가의 본질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태로 전락한 걸 우려한다/ 우리가 시를 쓰는 이유는 일상의 여유를 찾기 위함인데/ 당장 나부터도 어줍은 창작활동이 직업을 위협하며/ 심각한 정신장애를 초래하고 있다/나는 과연 이대로 좋은가/일도 잘하고 창작도 잘하고 싶지만/한 가지도 제대로 잡지 못한/현실을 탓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라고. 아마도 이러한 고백은 엄학섭 시인뿐 아니라, 돈도 되지 않는 시에 목매달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시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학섭의 시 중에는 풍물시나 동화시나 메타시 이외에 다수의 사랑시가 보이고 동시 형태를 지닌 시들도 여럿이 보인다. 특히「몽국설화」,「배의 자궁에는 청토끼나무새가 산다」와같은 산문시 형태의 설화시는 우수한 작품성도 겸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만한 시들이다. 이러한 시들은 동화시가 보여주지 못한 서사적 부피를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엄학섭의 시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시의 지평이라고 판단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엄학섭의 시는 잃어버린 토속적 언어를 찾아서 발굴해내려는 박물학적 언어관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구어체에 녹아든 남도방언과 시인이 발굴해낸 창의적인 토속어들의 상호융합작용을 통해서 시적 긴장감이 형성되는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세계는 분명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 시단에서 희귀한 것이다. 특히 혼탁한 문명세계의 현실로부터 벗어나 시인으로서의 염결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부산물인 동화적 상상력의 시들은, 아직도 패거리 문단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 시단에 신선한 청량제가 되리라 생각된다.

 

 

 

 

 

엄학섭 시인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국크리스찬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집은 천둥오리 따라간 때까우가 있다

2012년 우당문학회 사무국장을 거쳐서

은혜와 복의 나무라는 다음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엄학섭 시인의 첫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문학박사 우당 김지향 시인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오늘의 기반인 어제를 상고하는 원칙을 갖고 있다. 엄학섭 시인은 장시 <옛날 그 옛날>에서 어렸을 때의 일을 추억하는 데서 활기찬 미래를 설계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언어사용 솜씨도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토속어와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음은 자신감의 표출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 또한 섬세하고 세련된 모습에서 귀골의 시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에 세련된 옷차림이며 겸손한 말솜씨까지 요즘 시대에선 흔하지 않은 예의바른 젊은이라는 인상을 느끼게 한다 .

 

 

 

뿐더러 이러한 겸손한 교양미가 작품속에서도 은연중에 나타나지만 그의 치열한 탐구의식이 오히려 돋보일 뿐이다. 이러한 탐구의식이 작품 전편에 고루 내재되어 있는 시인이 흔치 않은 오늘의 실정에선 귀한 시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오랜 문단풍토에 길들여져 살다보면 개성이 묻혀버릴 수가 있지만 엄학섭 시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으리라 본다 엄학섭 시인에겐 어떤 일을 맡겨도 빈틈없이 해낼만큼 책임감이 강한 성품을 갖고 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가리지않고 맡은 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열심히 수행함으로써 모범을 보이고 있는 일상생활의 태도에서도 그 고집스런 개성을 엿보게 한다 때문에 필자는 엄 시인의 그 고집을 믿기 때문에 그 귀한 개성인 토속성을 보다 열심히 갈고 닦아 유일무이한 귀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라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않는 바이다

 

                                                                                                          

 

 

 

 

시 읽는 재미를 주는 시인

 

 

 


위대한 일은 열정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엄학섭 시인의 삶의 열정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것들이다. 시 쓰기의 치열함 또한 남달라 퇴고를 그만큼 하는 시인도 드물 것이다. 그의 열정은 신앙생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교회 성가대에서 성실하게 봉사하고 있다.

 

 

 

 

 

엄학섭 시인의 작품은 무엇보다 동화적 상상력에 닿아 있다. 「천둥오리 따라간 때까우」란 시집 제목만 보더라도 동화 한 편의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난해한 실험시들이 난무하여 자칫 독자들의 시에 대한 흥미가 반감되기 쉬운 이때에 시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시인이다. 토속적인 향토방언은 또 어떤가. 「옛날 그 옛날」을 읽다보면 고향의 서정과 향수를 자극하여 우리 마음을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는다. 시인이 낳고 자란 문학의 시원始原이라 할 수 있는 고향의 사투리를 하나하나 生語로 살려놓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돋보인다. 이는 백석 시인의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 웅숭 깊은 목소리다.

 

 

 

엄학섭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과 향토방언사랑은 나라사랑과도 맞물려 있다. 국경일의 의미를 담은 작품도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있다. 웅진출판사 학습지 교사로 오랜 시간 어린이들을 지도해온 경력이 말해주듯 맑은 글쓰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의 시적 상상력과 깊이가 무한대로 확장되어 세계로 뻗어가는 시인이 되길 기원하며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최연숙 시인 (과천 예총 시 창작교실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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