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의 추천시

릴케--기도

엄학섭 2008. 3. 16. 06:49

릴케--기도

 

 

저는 당신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당신은 저의 수백 개의

인생 여정을 알고 있는 매우 친근한 분입니다.

저는 당신을, 모든 어린이들을 알고 있었고,

모든 현들을 잡아당겼던 그런분으로 불렀으며

당신에게 저는 어둡고 조용한 존재입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을 저의 밤들의 가장 가까운 분이며

저의 저녁들의 무언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떤 사람도 생각해낼 수 없는 그런 분이며

먼 옛날부터 당신은 결코 상상 될 수 없었던 분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제가 나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했던 분이며

익숙한 집처럼 제가 들어갔던 분입니다.

지금 당신은 제 위로 크게 뻗어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생성되는 것 중에서 가장 빨리 생성 되는 분입니다.

 

나는 더 고독해집니다.

표면이 더 커지고,

날씬한 나무들이 나란히 서있고,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은

마치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집처럼 작아집니다.

곧 나는 최초의 인간이 될 것입니다.

 

거의 길들여지지 않는 양 불꽃들은 나를 섬기고,

나의 개천들은 인간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꺾은 꽃 한송이는

베일을 쓴 여인처럼 나를 비웃습니다.

이슬은 고귀하고 시원한 돌멩이와 같고

바람은 나의 옷과 같으며,

그리고 저녁빛은

길게 자란 나의 머릿결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사물들과 유사하게 되어, 실재적이고 멈춰 있으며 무겁습니다.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것은 바다로

배를 날라주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것은

나의 삶이 나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를 소유하기 전에는

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더 이상 보지 않는다면

나는 홀로 머무르렵니다.

나는 머무르렵니다.

내가 써내려가는 말 속에서가 아니라

소멸하는 모든 것들 속에서

바람이 붑니다......,

나는 더 고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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